부산 운전면허증 재발급 받는 방법 + 온라인 신청 완전 정리

해탈로 이르는 길에는 아냐 요가인 '앎의 요가'가 있습니다. 힌두 정통학파의 철학 중에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2개의 학파를 구성하는 미 밈 사가 있습니다. 미 밈 사는 '숙고'를 뜻하는 말입니다. 베단타의 주요 스승들은 '우파니샤드'와 '브라만 수트라', '바가와드기타'에 대한 주석을 남겼는데 이는 '나는 누구인가?'와 관련이 있으며 이 도는 것의 궁 국인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중 8세기에 불 이론이 확립됨으로써 확고한 앎을 강조하는 아냐 요가의 토대를 닦게 되었습니다. 불 이론이 개조된 것이 상키야이며 이는 가우더파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불 이론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마음은 환상을 통해 활동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임을 뜻하는 불 이론만이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상키야 철학은 브라만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브라만은 실재하며 현상적인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상카라는 불 이론을 구체화하면서 브라만을 상위존재와 하위존재로 구분했습니다. 최상위 브라만은 분화되지 않는 절대자이며 모든 개념을 넘어 구별할 만한 특징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위 바라만은 마야를 통한 현상적 드러남으로 인격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브라만은 우주의 원인이자 모든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를 내리는 존재로 좋고 싫음이 없으며 에고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을 성취한 자를 뜻합니다. 무수한 차별이 있는 현상 세계를 창조한 신은 원래 무차별, 무속성이지만, 인간은 무지로 인해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세계가 허상임을 알게 되면 브라만과 아트만이 원래 동일한 존자래는 '범아일여'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해탈에 도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카라는 오직 하나의 정신이 존재하고 이것이 바로 브라만이라는 유일한 실재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상키야 요가철학의 푸르샤, 프라크리트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우주의 전개와는 살짝 다릅니다. 상카라는 이 세계에 드러나는 모든 다양성을 오류로 간주합니다. 생명과 정신의 결합은 단순한 현상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환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지에 둘러싸여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실재론적 입장에서 우주가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창조와 재흡수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창조도 처음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씨앗이 싹이 터 자라고 다시 씨앗을 맺듯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뒷받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의 세계는 오직 환상이며 진리는 논리가 아니라 내적 깨달음으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우주는 영원하고 근본적인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없다면 세계가 존재할 수 없으며 정신은 브라만의 변형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런 특징들은 장작 속 불꽃처럼 숨겨져 있으며 해탈이 된 이후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감각기관, 생명 에너지는 미세한 몸을 형성하는 부가적인 것들이며 이것들에 의해 신성이 가려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심리기관들과 행위들은 윤회 때마다 영혼을 따라다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외적 부가물들로 환상의 일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잘못된 동일시로부터 삶의 모든 괴로움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해탈은 이 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상키야요가에서 말하는 푸루샤의 개념과 유사한 것입니다. 순수의식은 정신적인 빛이면서 브라만과 전적으로 동일한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별적 자아가 브라만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데 있는 것입니다. 상카라에서 중요시했던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오직 브라만과 영혼의 동일성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 집착의 상태에서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오로지 카르마 요가를 오랫동안 수행해야만 이러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냐 요가는 앎의 요가라고도 불립니다. 앎을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알은 깨어져야 하면 본래의 역할을 하는 운명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벽을 깨고 나오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앎을 위해서는 학습, 반성, 명상의 과정이 수반됩니다. 앎의 요가는 '나눈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그 생각에 대한 관찰을 기초로 판단을 배제하는 명상 요가입니다. 종교적인 신념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며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있는 요가입니다. 진리는 모든 이론 너머에 있으며 오직 보는 것으로써 체험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오직 보는 것' 이라는 측면에서는 불교 수행도 앎의 요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