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운전면허증 재발급 받는 방법 + 온라인 신청 완전 정리
님바르카와 라마누저는 둘 다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붙이는 '하나'라는 뜻으로 제한된 인식을 지닌 인간이 절대와 현상계의 관계를 이해해 보려고 애쓴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남바르카에 의하면 싯(지각이 있는 생명체), 어싯(지각이 없는 물체), 이슈워러(정신) 3가지의 실체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의미상으로 복트르(누리는 자), 보겨(물질), 누연트르(지배자)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싯는 앎의 본성이 있는 것으로 감각기관의 도움 없이도 직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태양이며 동시에 빛이기도 한 근원처럼 시식이며 동시에 지식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라마누저에 따르면 개별적인 정신은 의식의 주체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해탈의 상태에서도 느껴지며 '파라 브라만'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싯은 어떤 상황에서도 경험을 누리는 자로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영혼은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원초적으로 순수한 상태의 영혼들은 종종 브라만과 동일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점은, 하나는 세상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힘이 없고 세상의 창조와 통제가 전적으로 브라만에게 달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브라만은 어디에나 있지만 영혼은 원자만 한 크기이며 무한하고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싯은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신의 은총으로 참된 본성이 완전히 드러날 때 끝을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브라만의 특성에 대한 올바른 앎을 통해 헌신하게 되면 영혼은 본연의 순수함과 큰 행복의 상태를 회복하여 해탈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어싯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설명됩니다. 하나는 구나로이루어진 프라크리트로부터 파생된 프라크르타이고, 하나는 태양처럼 빛나는 이슈워러, 프라크리트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닌 어프라크리타입니다. 라마누저는 지각이 없는 물질세계는 브라만이 실재하지만 영혼과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브라만, 영혼, 물질은 개별적으로는 구분되면서도 동시에 똑같이 실재하는 것으로 합일을 이루는 세 가지 개체로 묘사됩니다. 이슈워러는 최상의 존재인 프라만인 크리슈나입니다. 크리슈나는 본성적으로 이기심이나 집착 등 모든 결함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모두가 사랑할 만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의 신, 유지의 신, 영적 지식 보급의 신, 개벽의 신의 역할을 하는 4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주의 창조는 전에 미세하던 것이 거친 형태로 드러났을 분이며 일종의 수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브라만으로부터의 우주 창조는 새로운 것의 창조이기보다는 속성이나 조건의 변화일 뿐이며 그것이 미세한 상태에서 거친 상태로 단순히 변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브라만이 몸을 갖추기 위한 거친 형태의 결과물인 것처럼 우주의 멸망은 거친 것이 다시 미세한 것으로 흡수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싯,어싯, 브라만의 상호관계는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데 '당신이 바로 그다', '내가 바로 브라만이다'라는 구절이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마드워에 따르면 신은 세계 속에 있으며 개별적 자아와 물질들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신은 그 첫 번째 산물인 3가지 구나를 초월해 있다고 표현됩니다. 그의 주된 기능은 창조, 보호, 해체, 전능, 지식, 개아를 세상과 구원에 대한 앎에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마드워는 신이 인간의 영혼을 창조했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인간 개인의 영혼은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결코 신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는 신에게 무한히 가까워져서 은총을 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아에 대한 명상적인 앎은 신의 은총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유를 성취할 때 직접적인 경험으로 변형된다고 합니다. 해탈은 직접 앎으로서 성취되는 것으로 직접적인 앎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은 현생이나 내생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행위, 신의 위대함과 선함에 대한 중단 없는 사랑과 헌신 즉 박티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가와드기타'에서 이야기하는 카르마 요가의 정신 아래 주어진 의무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앎을 통한 해탈의 길에는 냐너요가와 박티요가가 있습니다. 이는 모두 인도 중세에 유행한 철학 사조로 굽타 제국의 멸망으로부터 무굴제국이 성립되기 전까지의 시기입니다. 이후 북인도 지역에서는 믿음과 헌신을 강조하는 봐이슈너비즘이 인기를 끌었습니다.